건강 루틴,
왜 나만 못 지킬까
아침에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로 옮겨 앉는다. 소파에서 사무실 의자로. 퇴근하면 다시 소파로.
하루가 끝날 무렵 내가 이동한 거리를 떠올려보면 생각보다 훨씬 짧다. 자리만 바꿨을 뿐,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이게 나만의 이야기일까. 나의 문제일까?
헬스장 등록하고 한 달 만에 안 가면 의지력 탓. 건강한 식단이 작심삼일이면 내가 나약한 탓.
우리는 그 자책을 잠깐 멈추고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셀프케어는 우리 사회가 발명한 키워드
잠깐 생각해보자.
우리 조상들은 "오늘부터 운동 시작"이라는 결심을 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결심하지 않았다. 불을 피워서,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장작을 팼고, 물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물을 길으기 위해 걸었고 계절의 리듬에 따라 먹고 자고 움직였다.
움직임. 자연식품. 수면. 사람과의 연결. 이 네 가지는 삶 안에 이미 녹아 있었다. 애써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간호사 출신 헬스 코치 Heather Ratliff는 TEDx 강연에서
현대인의 셀프케어인 — 식이 조절, 운동, 수면 관리, 스트레스 관리 — 이것은 자연적인 인간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발명품"이라고 했다.
이 단어 자체가 일단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화된 노동이 몸의 움직임을 제거했고, 가공식품이 자연식품을 밀어냈고, 인공조명이 수면 리듬을 무너뜨리고, 스크린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연스러운 삶의 요소들이 하나 둘 씩 없어지기 시작했고,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인간이 발명한 키워드가 셀프케어다.
현실은 설탕이 잔뜩 들어간 음식들을 만들어 놓고,
비만과 당뇨병을 위한 약을 만들어서 환자에게 처방한다.
나는 이런 사회적 현상이 가끔은 안타깝다.
인간은 본능이 아닌 것을 실천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게 쉬운 일인 것처럼 하지 못하면 내 탓인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셀프케어를 실천할 때 어려움이 느껴지는 것이 이 부분일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좋아하는 운동 찾아봐요."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돼요."
이 말들은 친절하게 들리지만, 실천 하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또한 자책감과 부정적인 감정을 안겨준다.
쉽다고 했는데 내가 못 하면 이유는 하나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내 문제구나...'
운동이 하기 싫은 이유
로잉머신은 노를 저어 물 위를 나아가던 동작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노를 저으면 어딘가에 도달했다. 맥락이 있었고 결과가 있었다.
헬스장에서 바벨을 들고 내려놓으면? 바벨은 처음 자리에 그대로 있다.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는다.
몸은 그 맥락의 부재를 느끼고 있다. 끊긴 흐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헬스장의 런닝보다 야외 러닝이 훨씬 재미있고 시간이 빠르게 가는 이유다.
Heather는 이걸 "가짜 노동(fake work)"이라고 부른다.
가짜라는 말이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진짜 맥락이 제거된 채로 만들어진 대안이라는 의미다.
이 것은 비단, 운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흐름(Flow)이란 건 원래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데, 내가 왜 이걸 하는지, 이게 어디로 이어지는지 감각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사람은 지속할 수 있다. 그 연결이 끊어진 자리에서 의지력은 빠르게 소진된다.
그래서, 사람간의 연결을 느끼며 하는 운동들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운동이 하기 싫다고 느낀다면 사실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닌, 내 몸이 맥락 없는 움직임을 원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몸이 기다리는 건 네 가지 신호다
Heather는 인간의 몸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화학적 신호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자연 상태의 음식. 움직임. 일주기 리듬에 맞는 수면. 그리고 연결.
유행은 변해도 이 네 가지는 수만 년을 관통해온 인간의 삶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조상들에게 이 네 가지는 삶에 자연스럽게 내장되어 있었지만, 현대에는 이것들의 질과 양이 점점 방해 받게 되었다.
가공식품이 자연식품을 대체했고 좌식 노동이 몸을 의자에 묶었고 인공조명이 수면 리듬을 뒤 바꿔 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내가 주목하는 항목은 "연결"이다.
자기 자신과의 연결.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 나보다 더 큰 무언가와의 연결.
이 연결들은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화학적 기반이다. 생물학적으로, 연결이 끊기면 몸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 자체가 달라진다.
혼자 하는 자기계발에도 한계가 있다. 연결이 있을 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건 의지력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연결'의 결핍으로 인한 수요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
의지력만으로는 구조적 결핍을 채울 수 없다
결국,
셀프케어가 어려운 게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면, 해결도 우리의 의지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변해야 한다.
내가 시스템을 변화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Heather는 이것을 "복잡한 문제(complex problem)"라고 말한다.
복잡한 문제에는 복잡한 접근이 필요하다. 의지력 하나만으로 해결하려는 건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풀려는 시도다.
구조를 설계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내 환경과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 그 안에서 가능한 '루틴'을 만드는 것 또 연결을 만드는 것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기에
어떤 공간에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지. 어떤 시간대에 무엇을 배치하는지.
이것들이 의지력보다 먼저 작동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습관이 되고, 루틴이 되고, 나의 정체성이 된다.
실패했을 때, 자책 대신 호기심을 꺼내는 것
Heather가 강연 마지막에 강조하는 태도가 있다.
셀프케어에 실패했을 때 자책 대신 연민과 호기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현재 진행하는 세션에서도 나는 이야기한다. 실패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꼭 포함되어야 하는 '필수 요소'라고,
"이번엔 왜 안 됐지?" "다음엔 뭘 바꿔볼까?"
이 질문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 해서 도전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지속성을 가진다.
기분 좋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전략이다.
자책은 마침표지만,반면 호기심은 열려있다. 같은 실패를 두고도 "내가 문제"가 아니라 "방법이 안 맞은 것"으로 읽으면 또 시도할 수 있다.
콘텐츠가 안 되는 날. 일이 잘 안풀리는 날. 루틴이 무너지는 날.
그 날들을 자기 부족함으로 마침표를 찍을지. 성공을 위한 더 나은 전략을 삼는 발판으로 삼을지.
셀프케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환경이 우리 몸의 신호와 어긋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을 더 쥐어짜는 대신 흐름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를 조금씩 설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웰니스이다.